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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얘기가 다르잖아요? "생애 최초 대기업 강의 후기"

행복한안경사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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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매장으로 전화 한 통이 왔다.

 

"블로그를 보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한번 찾아가도 될까요?"

가끔 있는 일이라 흔쾌히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두 명의 님자가 찾아왔고 제품 개발에 필요한 소재와 안경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이것저것 성실히 답변해 주는 자세? 가 맘에 들었던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기 팀에서 강의 한번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그날 만남을 마무리했다.

이런것 개발하는 분들??

 

 

그리고 2023년 4월  잊고 지냈던  그 사람들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일전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세미나 한번 진행해  주세요. 강의 주제는 안경과 관련된 것이면 됩니다. "

 

이때만 해도 대 여섯 명 모여서 예전처럼 안경과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아주 단촐한 자리일 거라 예상했고 별생각 없이 허락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건 일정을 일주일 정도 남긴 어느 날이었다.

세미나 관련 새로운 담당에게 연락이 왔는데 강사프로필, 통장사본. 개인정보활용 동의서등...

뭔가 체계적인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잠시 가서 안경과 관련된 얘기만 하고 오는 게 아닌가?'

불안한 마음에 새로운 담당에게 몇가지 질문을 했다.

 

"혹시 회의에 참여하는 인원이?"

"혹시 저 혼자 얘기하는 건가요?"

 

TV나 유튜브에서 봤던 김미경이나 김창옥 같은 유명 강사의 모습을 떠 올리고

질문했는데 돌아온 답변도 그쪽에 가까웠다.

 

'아, 망했다!'

 

참여 인원은 20 명 이상이고

30분정도 강연 후 토론하는 형식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난, 이런 것 해본 적이 없는데?'

 

안경사라는 직업 특성상 1:1이 주특기고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을 상대해 봤자 4:1 정도가 최대치라

5명이 넘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얘기해 본게 적어도 서태지 데뷔 때쯤이라

눈앞이 캄캄했다.

 

가뜩이나 캄캄한 눈앞을 더 깜깜하게 만든 것은  일주일 밖에 안 남았고

나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다는 것.

 

이때부터 우선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만들어 보았다.

 

1. 강의 주제 정하기

2. 내용 구성하기

3. 프레젠테이션 준비하기

4. 프레젠테이션 해 본 적 없어서 PPT 프로그램 사용법 공부하기

5. 삼성 노트북 가져가면 눈치 보일 테니 아이패드 가져갈까?

6. 애플 생태계 ppt 프로그램 공부하기

 

리스트를 만들었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뿐이었다.

 

1번. 주제를 무엇을 할까? 여기부터 진도는 나가지 않았고

매일 고민만 하다 3일이 더 지난 후 겨우 방향을 잡고 주제와 내용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운전면허 필기를 끝으로 벼락치기는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는데...

30년 만에 벼락치기라니...

 

다행인 것은 그동안 작성한 블로그에 이번 강의 주제와 관련된 자료가 충분히 있어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자료 수집 작업이 금방 끝났다는 것.

 

겨우 겨우 강의 하루 전날 어설프게나마 PT자료를 만들고

대본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자료에 맞는 내용도 적어보고

말로 표현했을 때 어색하지 않은지 확인해 보고 이상하면 수정하고...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 있었는데 결국 모든 것은 3일 천하로 마무리...

된 줄 알았는데 아이패드를 쓸 수 없다고 한다.

 

보안에 철저한 대기업답게 개인적인 전자기기나  프로그램 사용은 불가능.

결국 열심히 아니지... 급하게 만든 ppt자료를 pdf파일로 변환해 담당에게 메일로 보내면

강의할 때 담당이 자기 노트북에서 띄워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패드를 활용해 강의 준비를 했는데... 망했다.

 

'안 한다고 할까?'

'코로나 확진이라 담에 한다고 할까?'

 

강의를 해 본 적도 없는데 하다못해 10명이 넘는 사람 앞에 서본 적도 없는데

게다가  INFP인데 이건 너무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약속을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과 시간들이 연결되어 있어 그만둘 수는 없었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훈련소로 자진 입소하는 훈련병의 무거운 발걸음 보다 3배는 더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사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담당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대기업 '책임'이라는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과 친근한 말투에 긴장이 다소 풀어졌다.

'잘하면 망신은 안 당하겠구나'라는 기분이 들 때쯤 장애물 하나가 새로 등장했다.

 

쉬운 게 하나도 없네.

 

강의실로 이동하기 위해 몇 가지 관문을 거쳐야 하는데 방문객 확인 코너부터 발목이 잡힌 것이다.

설마 대한민국에서 내 발로 이동하는데 신분증이 필요할 줄이야...

미리 방문 사전접수를 했지만 신분증이 있어야 신원 확인 후 출입이 허가되는 그런 시스템...

역시 대기업!! 

담당이 여러 차례 얘기를 했지만 규율이 엄격한 탓에 쉽게 들어갈 수 없었고 

이런저런 확인을 다시 한 후에 겨우 통과!!

 

그리고 다음 코너는 공항 검색대에 버금가는 Xray와 금속 탐지기 검사.

여기서 개인 핸드폰의 카메라 렌즈는 차단이 된다.  물론 전화는 사용가능.

 

모든 난관을 무사히 통과한 후 미로 같은 공간을 가로질러 겨우겨우 강의실 입성!!

강의실은 "ㄷ"자 형태로 입구가 열린 곳에 본인과 칠판이 있고

나머지 테이블에 팀원들이 앉아 있는 구조였다.

 

강의 5분 전까지  사람이 없어서 '뭐지?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서 취소되었나?'

라는 달콤한 상상을 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강의는 간단한  본인 소개로 시작되었다.

내가 내 입으로 내 소개를 하는 게 엄청 부끄럽고 쑥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

내심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담당이 알아서 소개를 해주었다.

아쉬운 점은 내 세울만한 커리어가 없다는 것. ㅠ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으면

책이라도 쓸걸... 강의라도 할걸...  인터뷰라도 할껄... 학위라도 딸걸...

껄껄껄....이라고 잠시 후회했지만

"안경사 경력 거의 30년"  한 눈 팔지 않고 꾸준히 안경사로 살아온 것 또한 대단한 커리어라고 자기만족.

 

강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만인을 위한 하나의 안경 만드는 방법" 정도 된다.

안경은 상당히 개인적인 제품이라 당연히 사람의 수에 필적할 만한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안경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런 주제를 가지고

내용을 구성했고 여기에 안경사로 일하면서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처음치곤 무사히 강의가 끝났고 강의 내용과 사전 질문 내용으로 토론이 이어졌는데

대기업 다니는 분들답게  수준 높은 질문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예를 들면 

" 안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코패드의 최적의 면적과 각도는 어떻게 될까요?"

 이런 질문들이었다...

 

보통 강의 들어보면 자기 자랑 한 10분  분위기 띄운다고 시시껄렁한 얘기 한 10분

최근 정치얘기 한 10분  강의 주제 20분 자기 홍보 10분 정도로 구성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것 같은데

앞서 간단한 본인 소개에 한 2분 정도 사용한 것 말고는 모든 시간을 안경과 관련된 이야기로 꽉 채웠다.

이러면 참가한 분들이 싫어하려나?

 

강의를 마무리하고  담당과 함께 온 길을 되돌아 나와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니 비로소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대부분 첫 강의에 대한 경험을 물어보면 엉망진창이었다거나 좀 더 잘하지 못해 후회가 된다는 둥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나는 준비한 것에 비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나름 만족한다.

사실 더 열심히 준비를 한다고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강의를 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강의 듣는 사람들의 태도나 강의실 상태 그리고 본인의 당일 컨디션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걸 알았다는 것은 초보 강사의 정말 큰 성과다.

 

그리고 생에 처음 강의를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번  2023년은 이미 의미가 있는 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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