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탈 치매라고 해야 할까요?
지식에 대한 욕구가 커질 수록 실생활에서의 건망증은 심해만 갑니다.
안경원에서 혼자 근무하다보니 식사 시간을 간혹 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가끔 옆에 있는 빵집에 가서 먹을 거리를 사오곤 합니다.
오후 4시가 넘도록 손님이 계속 오는 바람에 그 날도 빵을 사왔습니다.
'이젠 좀 한가해 졌구나. 빵이나 먹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손님 한분이 들어옵니다.
'잠깐만요~ 행복한 안경사님 빵좀 먹고 받을께요~!'
라고 할수는 없고 열심히 손님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최선을 다한 마음에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요?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감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고 들어옵니다.
'어휴~ 간만에 바쁜 하루였넹.'
배고프고 몸은 힘들지만 요즘같은 어려운 시기에 이 얼마나 기쁜일입니까?
기쁜 마음을 와이프에게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합니다.
"에고, 바빠서 점심도 못먹었네. 우리 저녁 뭐 먹을까?"
"나도 지금 볼일 보고 막 들어왔는데 뭐 시켜먹을까?"
"아~ 그래 ? 그럼 빵 사 놓은 것 있으니 그거랑 간단하게 먹자."
"그럼 빵만 먹기 뭐하니깐, 우유도 사와.
제발 까먹지 말고 지금 바로 옆에 편의점 가서 사와.
그리고 나한테 확인 전화해"
상상을 초월하는 내 건망증을 와이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저렴하게 파는 슈퍼가 있지만
거기까지 가기 전에 까먹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경원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우유 사고 확인 전화를 하라고 합니다.
"나야, 지금 막 우유 사왔어. 매장 정리하고 바로 갈께."
이젠 해야 될 일은 안경원을 정리하고 매장 안경원 냉장고에 집어 넣은 빵을 꺼내서
우유와 함께 집에 가져가는 것입니다. 정말 간단하네요.
진열장 위에 널부러져 있는 안경들을 정리하는 동안 여자손님이 급하게 들어 옵니다.
"아직 안 끝났죠? 원데이 렌즈 하나 주세요."
다행히 손님은 렌즈 도수를 알고 있었고 시간 지체 없이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딩동"
"누구세요?"
"어, 나야 문열어."
배고픈 마음에 평소보다 서둘러 집에 도착했습니다.
"어휴~ 배고프다 빵먹자."
"우유 가지고 왔어?"
기상천외한 건망증에 아직도 적응이 덜 되었는지 우유의 존재부터 묻더군요.
"하하..당연하지 짜잔~!!"
내 스스로도 까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편의점에서 구입한 우유를 식탁위에 당당하게 꺼내 놓았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우유를 꺼내는 순간....
오늘의 주인공은 이 놈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은 불꺼진 안경원에서 적막함을 깨뜨리는 냉장고 모터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유통기한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여...여...보...우리 빵 말고 다른 것 먹을까?
잠들기 전에 밀가루 음식은 별로 안 좋을 것 같아.
점심도 안 먹었더니 밥먹고 싶네.. 밥통에 밥 없어?"
아..마지막에 원데이 렌즈 손님만 없었어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너무 억울하네요.
그 날 행복한 안경사는 빵대신 라면을 끓여먹었는지..
치킨을 시켜 먹었는지.. 뒤늦게 밥을 해서 먹었는지 ...와이프에게 욕을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이것조차 기억 못하는 건망증 ㅠㅠ)
역대급 건망증에 관한 에피소드하나는 건졌네요.
이런 정신 상태로 별다른 문제 없이 혼자서 안경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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