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있어요.
자크마리마지 매니아입니다.
하지만 가우디안경원은 "작마"를 취급하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꾸준히 찾아와서 안경렌즈를 의뢰합니다.
신기하죠?
안경렌즈는 주로 최고급 사양의 누진다초점렌즈를 사용합니다.
제가 만들어 준 다초점안경만 해도 5개 이상인데 모두 "바리락스 XR 프로" 렌즈로 맞췄습니다.
렌즈 가격만 200만 원 정도 합니다. 물론 한쌍 가격입니다.
왜? 이 손님은 안경테를 구입한 곳이 아닌 가우디 안경원을 계속 찾아와서
최고급 사양의 다초점 안경을 맞추는 걸까요?
궁금하지 않나요?
이제부터 자크마리마지의 무테안경인 엘도라도 작업과정을 보여 줄게요
어쩌면 여러분도 저에게 안경을 맡기고 싶어 질지 모르니 주의하시고
끝까지 재밌게 읽어주세요.
1. 자신감
"이거 만들기 까다롭다고 하는데 가능할까요?"
매번 렌즈 작업만 의뢰하는 게 미안했던지 손님은 조심스레 물어왔다.
작마 엘도라도는 렌즈 전면부에 프레임을 고정할 수 있게 넓고 얕은 홈을 만들어야 하는데
얼핏 보기에도 쉽지 않아 보인다.
손으로 구현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탓에
대부분 안경원에서는 의뢰를 받지 않거나 외주업체에 의뢰하게 되는데
다행히 가우디 안경원에는 "Mr.Blue"라는 최고급 장비와
행복한안경사라는 "무테 전문 안경사"가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가능합니다.
다른 곳에 맡기지 않고 직접 만들게요."
손님은 그제야 안심한 듯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남겨진 안경을 한참 쳐다보는데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폭이 생각보다 넓네.'
2.
분명 비슷한 작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미스터 블루로 간단하게 해결했고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는데...
먼저 손님이 두고 간 오리지널 렌즈를 사진 찍어 렌즈 분석 작업에 돌입
포토샵을 이용해 전체 사이즈, 구멍의 크기와 위치, 홈의 너비 등을 자세하게 확인했다.
무테안경 하나 만들기 위해 이런 과정을 거치는 안경사는 전국에 한 명 밖에 없지 않을까?
렌즈 분석이 끝나면 렌즈 가공을 위한 레이아웃 작업을 하게 되는데...
망했다!
원하는 크기로 세팅이 되지 않는다.
가공에 필요한 홈의 너비 4.2mm를 확보해야 하는데 최대 3.5mm까지만 가능. ㅠㅠ
전혀 생각지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
미스터 블루의 배신이다.
3.
충격에 작업을 며칠 미뤘다.
최고 가공장비의 도움으로 손쉽게 작업을 마무리하고 손님에게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무사히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라고 생색낼까 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어쩌면 차질이 아니라 모든 게 물거품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작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역시 미루기는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기계로 최대한 할 수 있는데 까지 하고 나머지는 공구를 직접 만들어 마무리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아이디어였다.
4.
3.5mm라도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라 해야 하나?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너비를 위해 야스리 하나를 준비했다.
평소 가장 아끼는 야스리였는데....
어쩔 수 없이 이번 작업을 위해 희생시키기로 했다.
야스리 한 쪽면을 갈아내 폭을 줄이고 끝부분은 동그랗게 갈아내 홈의 모양과 일치시켰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그럴싸하게 모양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아, 이게 무슨 생고생이란 말인가? ㅠㅠ
5.
실수를 줄이기 위해 여러 번 테스트를 실행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테스트는 아무 도움이 안 되는구나.'
여러 번 테스트한다고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첫 번째 테스트가 세 번째보다 나았다.
이 작업이 어려운 이유는 손으로 가공한 것을 마치 기계가 한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들여 인쇄한 책표지에 오타가 한 글자 있는데
이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손으로 작업하는 것과 같다.
물론 손님은 그 정도로 예민하고 깐깐하지는 않지만 문제는 본인이다.
손님에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안경을 내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원했다.
과연 결과는?
6.
타협을 하기로 했다
"손을 댈수록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거야"
내 안의 경험센서가 경고등을 켤랑말랑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만 빼고 모두가 만족했다.
'그래 이걸로 됐다. 2% 부족한 것은 200% 노력한 것으로 퉁치자.'
완성된 안경은 손님에게 택배로 발송됐고
며칠 후 손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무래도 다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 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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