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여행
원주는 가끔 생각나는 여행지 입니다.
이번에도 갑자기 놀러 가고 싶어졌는데 막상 갈 만한 곳이 보이지 않더군요.
그러다 지난 원주여행 때 스치듯 본 "그레이씨 안경공방"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여행 하루 전 어렵지 않게 찾아낸 그레이씨에게 문자를 보내 방문 약속을 잡았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말 섞는 것을 어려워하는 타입이라 '가서 무슨 얘기할까?' 걱정이 되더군요.
그레이씨 ? 그레이시?
브라질의 무술 주짓수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레드벨트.
그 중 9단을 넘어 10단에게 주어지는 레드벨트는 "최고의 명예" 혹은 "최고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10단은 오로지 주짓수를 창시하고 보급한 그레이시 가문의 1세대 형제들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제 안경에 있어 최고의 경지에 오르고 싶은 "그레이씨" 라는 이름은 여기서 왔다고 하네요.
머리가 혹시 백발이라 "그레이씨"가 아닐까? 라는 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찾아가는 길
그레이씨 안경공방은 원주 미로 예술시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원주 중앙시장의 일부라 원주 중앙시장으로 찾아가도 됩니다.
자세한 주소는 아래 네이버 링크를 참고 해주세요.
원주 미로 예술시장
주소를 잘 보고 갔는데 막상 미로 같은 미로 예술시장 건물에 들어가니 위치를 못 찾겠더군요.
하지만 이것 저것 구경하면서 다니다 보면 어느새 그레이씨 안경공방 앞에 도착하게 됩니다.
미로 예술시장은 그레이씨 안경 공방 외에 독특한 매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헤매는 것도 즐거운 곳입니다.
그레이씨 안경공방
도착하니 그레이씨가 누군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덕분에 매장 앞에서 예쁜 수제 간판과 디스플레이 된 여러 창작물을 구경할 수 있었네요.
손님?이 나가고 들어가 반갑게 인사 나눕니다.
수제 안경제작은 고독과의 싸움이라 과묵하고 진중한 분위기의 원장님을 기대했는데
외모와 달리? 엄청 유쾌하신 분이네요.
'무슨 얘기를 나눠야 하나?' 어젯밤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었습니다.
알게 된 사실들
간단하게 그레이씨에 대해 알게된 여러 사실들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남자 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안경 공방하는 여자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 이름이 홍진영이라 방문하기 전 여자분은 아닐까 살짝 기대했다고 하네요.
실망했다고 합니다.
안경사로 열심히 일하다 더 이상 늦으면 도전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모든 것을 접고 지금의 "그레이씨 안경공방"을 열었다고 합니다.
언제 오픈했는지 알려주셨는데 기억이 나지 않네요. ㅠㅠ 3~4년 된 것 같습니다.
매출이 적어 마지막으로 1년만 더 해보자 더 해보자 했는데 어정쩡하게 조금씩 성장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왔다고 하네요. 다행입니다.
작고 짧게 공방을 해봐서 압니다. 수제 안경 공방은 수익이 발생하기 정말 어려운 구조입니다.
몇 년째 운영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 분의 능력은 검증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게다가 서울도 아닌 원주에서 말이죠.
주로 하는 일은 크게 3가지라고 합니다
수제안경 제작 / 클래스 운영 / 뿔테안경 수리 및 복원
수제안경 제작은 의뢰를 받거나 직접 만든 안경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클래스는 말 그대로 고객이 직접 안경을 만들 수 있도록 알려주고 서포트 하는 일
뿔테안경은 수리 및 복원은 오래된 안경이나 망가진 안경을 새 것처럼 재탄생 시키는 일입니다.
수리 및 복원으로 여러 안경 커뮤니티에서 인지도가 높습니다.
이 외에도 곧 큰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공개된 것 같지 않으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안경공방 구경하기
공방이 지저분해서 걱정이라는 말과 달리 공방임에도 불구하고 안정감 있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1인 공방이 깔끔하다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합니다.
아주 한가하거나 결벽증이 있지 않는 이상 공방은 어느정도 작업 흔적들이 펼쳐져 있는게 정상이죠.
수제안경 공방답게 다양한 시트를 보유하고 있네요.
마쯔켈리부터 다이셀, 타키온 시트까지 고급 시트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네요.
그레이씨 안경공방은 1층이지만 복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1층은 작업 공간 및 상담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다락방 형태의 2층은 공방의 비밀 병기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아마 일반 의뢰인이나 소비자들이 오면 1층만 구경 가능할 테니 저는 2층 위주로 소개해 볼게요.
수제 안경을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안경 다리에 철심을 넣는 것입니다.
제가 수제 안경을 포기한 이유이기도 하죠.
이 장비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철심 슈팅기 입니다.
무려 프랑스에서 직접 가져왔다고 하네요.
제가 수제안경을 배웠던 로꼬 공방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장형 장비가 비치 되어 있었는데
프린터 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로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니 대단하네요.
국내에 하나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메뉴얼이 없어서 한동안 꽤 고생했다고 합니다.
적당한 온도와 시간을 산출해 작동해야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는데 그 값을 찾는 게 엄청 어려웠다고 하네요.
얼마 전까지 금속 안경테 수리도 했다고 합니다.
아크 용접기와 도색 , 도금 장비들도 갖추고 있습니다.
개인이 하기에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합니다.
하지만 뿔테에 집중하기 위해 최근에 금속 관련된 의뢰는 받지 않는다고 하니 참고해 주세요.
안경테 도금을 위한 다양한 장비들 입니다.
화학 약품을 다루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 투자와 경험이 필요한데
같은 안경사로서 존경스럽네요.
안경테 도색을 위한 재료와 장비 입니다.
원하는 색상을 내기 위해 다양한 색상을 혼합해야 하는데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가끔 도색 A/S 보내면 상상외의 색상으로 변신해서 돌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조색은 정말 어려운 분야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주 심한 차이가 아니면 이해해주세요.
공방에서 가장 비싼 장비 중 하나인 아크 용접기라고 합니다.
전문 수리업체에서나 볼 수 있는 장비를 공방에서 볼수 있다니...
원장님의 장비병이 중증이 아닌가 잠깐 의심해 봅니다.
그리고 여기서 신기한 것을 구경할 수 있었네요.
가끔 안경회사에서 제작한 유튜브에 나오는 폴리싱용 도구들인데 마치 견과류처럼 생겼어요.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까요?
작은 나무토막 같은 부속과 안경테를 커다란 통안에 같이 넣고 며칠? 혹은 몇 시간씩 돌리게 되면
반복된 마찰로 인해 안경테에 있는 미세한 스크래치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안경테에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주면서 폴리싱할 수 있는 매우 귀한 재료들인데
식물과 같은 취급을 받다보니 수입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다고 하네요.
2층에도 다양한 시트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수제 안경 제작에 필요한 직쏘와 홈파는 드릴도 있네요.
부러운 작업 환경입니다.
1층으로 다시 내려와 여기저기 눈을 돌려보니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장비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마침 공방 원장님 지인이 찾아와 저희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원주에 다시 놀러가게 되면 찾아 뵙기로 약속하고 그레이씨안경공방 방문기는 여기서 마무리 되었네요.
과거에 수제안경을 만들면서 고민하고 포기했던 이유는 모든 것을 맨땅에서 시작해야 했기 때문인데
그레이씨 원장님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저절로 응원하게 됩니다.
항상 번창하시길...
그레이씨 공방 원장님의 안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 그리고 철학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근들어 노력은 하지 않고 몸에 익숙한 습관대로 일하고 있는 본인에 대해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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