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되살려버린 오래된 샤넬안경 작업후기

행글라이더 강사라고 하는 분이 아주 오래 전 올렸던 샤넬선글라스 작업 후기를 보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본인도 같은 샤넬 무테안경을 갖고 있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보관만 하고 착용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살릴 수 있을것 같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살리고 싶으면 안경원으로 보내십시요. 상태를 본 후 협상합시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선 보내달라고 정중히 요청드렸습니다.

 

 

며칠 후 도착한 안경은 상태가 많이... 아주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각종 부속은 부식되어 있었고 렌즈는 흠집에 실금에...  한마디로 호흡게 떼기 직전 상태였습니다.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추측되는 안경렌즈

 

땀을 흘린 후 방치해서 발생한 부식현장

 

 

시작은 안경렌즈 주문부터...

샤넬무테안경에 장착된 렌즈는 8커브입니다.

피팅이 불가능한 제품이라 동일한 커브의 렌즈를 사용해야 합니다.

동글동글 귀여운 8커브 주문렌즈

 

투톤렌즈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도수가 없다면 기준점이 없어 수평을 나눌 때 감에 의존해야 합니다.

렌즈회사에서 제작 단계에서 마킹해 주면 좋겠지만 언감생심이죠. 

 

 

렌즈를 분리해서 보니 상태가 더 좋지 않네요.

렌즈를 스캔하기 위해 기준점을 표시하고 리더기 위에 사뿐히 올려놓고 작동시켰는데...

 

미러코팅이 벗겨지면서 여러 표시를 남겨 놓은 덕에 수평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ㅠㅠ

삐딱하게 기울어진 상태로 렌즈가 읽혀졌네요.

 

카메라 스캔은 포기하고 좀 더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렌즈를 지그에 고정시켜 그대로 스캔합니다.

이 방법은 정확하게 모양을 인식하는 장점이 있지만 렌즈 구멍위치를 직접 입력해야 하는 커다란~

작업자 입장에서는 정말 커다란 단점이 있습니다.

 

 

구멍 위치를 정하는 일은 매우 섬세한 작업입니다.

자를 이용해 간격, 위치, 크기등을 하나하나 설정해 줘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1 비율로 표시되는 기능이 있어 그 위에 데모렌즈를 올려두고 맞춰 볼수 있지만...

작은 오차에도 흔들림이 발생하는것이 무테안경이라 안경사의 자체 보정 기술이 꼭 필요합니다.

 

 

어렵게 구멍 설정까지 끝냈네요.

이제 바로 작업을 시작하면 .... 망하는 거예요. 그것도 폭망!!

8커브 렌즈는 특수 주문제작 상품이라 미러코팅가지 추가하면 비용도 비싸고 제작기간도 오래 걸립니다.

한번 실수는 비용과 시간에 엄청난 손해를 끼칠 수 있어 신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준비한 폐렌즈... 렌즈 중간에 쓰윽~ 그어진 흠집 보이시죠?

이 렌즈를 갖고 테스트 가공을 합니다.

 

우와~ 이럴수가... 여러분 박수 좀 쳐주세요.

놀랍게도 한방에 거의 딱 맞습니다.

구멍이 조금 작고.. 코쪽 구멍위치가 낮으것 빼고 말이죠.

 

 

2.00으로 되어 있는 구멍 크기를 2.1로 늘려줍니다. 단위가 cm가 아니라 mm 입니다.

얼마나 정교하게 작업해야 하는지 감이 오시죠?

옛날에 이 모든것을 안경사의 손기술로 해결했다는...

 

 

구멍 높이도 조절합니다.

렌즈 가장자리 홈에 비해 렌즈 구멍이 너무 낮으면 렌즈가 올라가 형태가 됩니다.

귀쪽 높이를 낮추기 위해서는 홈과 비슷한 높이로 올려야 합니다,  8.14에서 8.50mm로 높이를 수정합니다.

정해진 답이 없어 감으로 조정합니다.

 

한번 더 테스트해야 하는데 왠지 감이 좋습니다.

바로 진짜렌즈를 이용해 작업합니다.

미리 그어둔 수평라인을 기준으로 착색농도를 결정합니다.

수평라인인 위로 올라가면 좀 더 연한 투톤색상이 되고

내려가면 좀 더 진한 색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손님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합니다.

 

 

렌즈가 예쁘게 가공 됐네요.

이제 작업하러 가볼까요??

 

샤넬 무테안경은 프레임에 너트역할을 하는 부속이 용접되어 있어 

세트로 제작된 볼트를 사용해야 합니다. 물론 찾아보면 맞는 부속이 있을 수 있지만

두께와 길이가 한 세트로 된 오리지널 부속을 사용하는 속 편합니다.

재사용을 위해 나사를 분리했는데 렌즈만큼 상태가 좋지 않네요. 

일이 점점 커지는 듯한 이 불길한 예감...

 

와셔는 교체가 가능한데 나사와 굳건하게 붙어 있어 분리가 되지 않습니다.

청소도 할겸 wd40에 잠시 담가둡니다.

이왕하는 김에  모든 부속을 분리해 녹제거 작업을 합니다. 

 

렌즈를 제거하고 나니 경첩부위의 녹도 매우 거슬립니다.

손님에게 미리 말해두지 않은게 후회됩니다.

그대로 작업해도 상관없었지만... 생각보다 깔끔하게 제거되는 바람에 모든 부위에 남아 있는 

지저분한 흔적들을 말끔히 제거했습니다.

미리 말해두었으면 적어도 몇만원을 더 받았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안경이 예쁘게 만들어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오리지널 렌즈에 비해 푸르딩딩하긴 하지만 작업은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작업시간이 거의 한시간 정도 걸렸네요. ㅎㅎㅎ

음... 생각보다 어렵고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을 까먹는 바람에 

작업료를 따로 청구하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난이도 있는 작업을 해서 뿌듯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