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안경이 지겹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
너무 더워서 그런가?
안경 코받침이 닿는 위치에 피부트러블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얼굴로 먹고사는데 이러면 곤란하다 싶어 다양한 방법을 찾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내 얼굴에 색소침착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는 놈은 안네발렌틴 포에버와 아이반 뿔테안경.
아,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6년 전 안경을 찾다.
모든 방법을 실패하고 어쩔 수 없이 삶에 순응하려는 순간!!
집에서 뒹굴거리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가메마넨 새들노즈 안경테. 안경렌즈는 아마 바리락스 x를 사용했던가?
3년, 아닌가? 더 오래되었나??
어느 순간 내 나이를 정확하게 떠올리기 어려워지는 것처럼
자연스레 일상이 되면 시간 감각이 사라져 내가 이 안경을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언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헉! 이럴수가!!
과거에 이 안경을 만들 때 작성한 블로그 포스팅을 찾아보니 2018년.
무려 6년이나 지났다.
시간은 언제나 이렇게 빠르게 지난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프다. 어흑!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지만...
6년 전 본인은 노안이 그리 진행되지 않은 시점이라 매우 낮은 근용도수가 들어간 (add +0.75)
바리락스 x누진다초점렌즈를 사용했고 주기적으로 안경을 갈아탄 탓에
여전히 가메만넨 안경에는 낡고 오래되고 도수가 잘 맞지 않은 그때 렌즈가 그대로 장착되어 있었다.
다행히 노안이 더 진행되어 근거리가 조금 덜 보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쓸만했다.
내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것은 점점 더 심해지는 피부트러블이라 괜찮은 선택이었다.
하루를 그렇게 버티고 퇴근하러 가는 길.
세상의 모든 불빛들이 현란하게 갈라져 춤을 추고 있었다.
가로등, 간판, 자동차 헤드라이트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길게 쭉쭉 뻗은 빛무리를 뽐내고 있었다.
방치된 동안 코팅 상태가 더 심각해졌는지 밤이 되니 안경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원거리 시력은 안경 없이도 큰 불편함은 없는 편이라 안경을 벗고 무사히 퇴근했다.
하지만 대책이 필요했다.
니콘 얼티밋 누진다초점렌즈
4일이 지났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 불빛이 번져 보이건 말건 그냥 쓴 채로 야간 운전도 하고 모든 것을 다한다.
귀찮음이 불편함을 이겼다.
그러다 갑자기 최근에 맞춘 다초점렌즈 한쌍이 놀고 있던 게 떠올랐다.
얼마 전 니콘에서 Z 시리즈를 새로 출시했다.
본인은 베타테스터로 당첨되어 두 조의 안경렌즈를 제공받았다.
기존 얼티밋 누진다초점렌즈와 새로 출시된 얼티밋 Z 누진다초점렌즈.
기존 얼티밋 누진다초점렌즈를 먼저 사용해 보고 동일도수 동일 안경테에 새로운 렌즈를 사용한 후
피드백을 주는 역할이었다.
새로운 얼티밋 Z를 최종렌즈로 사용하면서 기존 일반 얼티밋이 주인 없이 놀고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 렌즈를 살릴 수 있을까?
참고로 니콘의 Z 시리즈는 니콘 카메라 렌즈에 적용된 코팅기술을 안경렌즈에도 적용한 시리즈로
조명환경과 어두운 환경에서 향상된 대비감과 시야를 제공해 주는 최첨단 누진다초점렌즈로
얼티밋 Z는 시리즈 중 최상위 등급의 제품이고 현재 주력으로 사용 중.
색상 재현력과 대비감도가 매우 뛰어나니 요즘 들어 세상이 우중충해 보이는 분들이 있다면
꼭 사용해 보라고 추천!
죽은(?) 안경렌즈 살리기
안네발렌틴 포에버와 가메마넨 안경은 모양이 다르지만 전체 둘레는 비슷해 보인다.
가능성이 있다. 관 속에 있던 시체를 다시 꺼내기로 한다.
안경렌즈를 옮기는 것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초점위치다.
다행히 초점위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브리지 길이가 얼추 비슷하다.
렌즈를 다른 곳에 옮겼는데 막상 초점 위치가 변경되면 성능이 떨어지거나 아예 사용이 불가능할 수 있다.
특히 다초점렌즈와 같은 기능성렌즈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즉, 사이즈가 맞는다고 무조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공할 렌즈의 사이즈가 여유가 있고 초점위치도 잘 맞출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쉬운 작업이 된다.
과거에는 가공된 안경렌즈를 다른 테로 옮길 때 안경사의 손기술이 필요했지만
가공 장비들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어지간한 것은 기계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즈가 간당간당하거나 둘레 길이는 비슷한데 모양이 다르면 역시 안경사의 손기술이 필요하다.
다만,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좌우 모양을 완벽하게 맞추는 것은 어려우니 어느 정도 아쉬움은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안경사이다.
가우디만 가능한 아주 특별한 작업
안경사가 양쪽 모양이 다른 안경을 쓰고 있으면 손님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자기 안경도 제대로 못 만드는 사람한테 내 안경을 맡겨도 될까?'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겠는가? 그럴 수는 없기에 아주 특별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새로 작업할 안경테 모양을 저장한다.
2. 가공할 안경렌즈 모양을 불러온다.
3. 저장한 안경테 모양을 안경렌즈 모양에 맞게 수정한다.
4. 실제 안경테 모양을 새로 가공할 안경렌즈 모양에 맞게 변형시킨다.
5. 사이즈를 조정하며 안경렌즈를 가공한다.
글로 읽으면 이게 뭔 소린가 싶다.
간단히 말해 안경테 모양을 안경렌즈 모양에 맞게 변형시킨 다음 사이즈를 조정하는 작업이다.
안네 발렌틴 포에버에 들어 있던 렌즈를 가메만넨 안경에 옮기기 위해 모양을 비교해 봄.
음!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 같군.
좀 더 정확하게 비교해 보자.
위 사진 속 흰색은 가메만넨 안경테 모양이고 검은색은 안네발렌틴에 들어 있던 렌즈모양이다.
가메만넨 안경테가 안네발렌틴에 비해 위아래로 더 길고 좌우가 더 짧다.
이런 경우 안경렌즈 보다 안경테를 변형시키는 게 더 유리하다.
안경테 위아래를 꾹꾹 눌러 좀 더 납작하게 만든 다음
각종 도구를 사용해 모양을 잡아준다.
어차피 프레임 모양은 안경렌즈 모양을 따르기에 적당히 잡아주기만 해도 된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해보자.
안경렌즈는 흰색 라인을 기준으로 컷팅된다.
안경렌즈 모양(검은색 라인)과 거의 비슷하게 조금만 더 작게 가공하는 것을 목표로
흰색 라인을 수정한다.
3개의 라인이 생겼다.
검은색은 렌즈 모양, 빨간색은 오리지널 안경테 모양, 흰색은 수정된 안경테 모양.
시간이 오래 걸려도 검정라인과 흰색라인을 최대한 맞춰보자.
이 작업을 해주는 안경원은 대한민국에는 아마 없을 듯.
오른쪽 렌즈 설계를 마치고 반전시키면 왼쪽 모양이 나온다.
이대로 작업하면 좌우 동일한 모양으로 가공을 할 수 있다.
드디어 좌우 모양이 똑같은 안경이 완성되었다.
이랬던 안경(좌측)이 이렇게 (우측) 되었다.
어휴 힘들어!!